한국어로 쓰여있는데 읽을 수 없는 슬픔
읽을 수 없는 슬픔 2
이 두서 없는 글을, 제 생각의 시작점이 되어주신 수하님과 귀한 댓글을 달아주신 쟝쟝님, 그리고 알라딘의 떠오르는 샛별 유수님에게 바칩니다.
<공부, 읽기, 번역>에 관한 수하님의 좋은 글에 제가 짧은 먼댓글을 달았는데 쟝님이 좋은 댓글을 달아주셔서 거기에 이어서 조금만 더 이야기해 보면 좋을 것 같아 씁니다. 두 글(https://blog.aladin.co.kr/suha/14807668: 한국어로 쓰여있는데 읽을 수 없는 슬픔, https://blog.aladin.co.kr/798187174/14808566: 읽을 수 없는 슬픔2)과 댓글을 읽고 오시면 이해에 큰 도움이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사옵니다.
수하님의 원래 질문과 물음에는 번역에 대한 부분도 상당했는데, 저는 그쪽으로 잘 모르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대한민국의 출판문화가 ‘왕성’해지는 것을 ‘바라는 것’ 외에 아직 뾰족한 방법은 없는 것으로 보여서 일단 개인이 할 수 있는 실천으로서 ‘공부’와 ‘읽기’에 조금 더 중점을 두고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먼저, 쟝님의 제안입니다.
1. 이해못해도 그냥 읽는다. (그걸 겹쳐서 계속 읽어가는 방법... 페미니즘 책 계속 읽다보면... 나온 사람 또 나옵니다. 보니까 푸코 계속 나오고 라깡 계속 나오고 그럽디다. 히히.) 저는 냉장고에 이름들로만 지도를 만들어서 붙여뒀어요. 열심히 선을 그어둡니다. 그들의 관계망을. 새로운 이름이 나오면 추가를 시키고요, 계속 업데이트(?) 하는 중입니다. (메이야수와 그레이엄 하먼까지 나왔습니다...).
2. 왠지 끌리는 사람이 있다? 그럼 그 사람을 판다. (푸코 파다가 데리다를 알았는데... 엘렌 식수 남친이었고 그런 사연...) 평전 읽기 -> 입문서 읽기 -> 저작 읽기 -> 해제 있으면 저작과 해제 같이 읽기!! (이 역시 그 사람을 중심으로 관계 망들이 쭉 만들어지면 좀 재밌어요. 위에 말한 그림이 점점 촘촘해 집니다~)
3. 좋은 입문서!!!를 읽는다. 그런데 여기가 문제이지요. 좋은 입문서.....는.................. (친일파 주의) 일본이 짱입니다. 그러나 페미니즘은....... 일본이 꽝이고요. 한국이 나은 것 같습.....
세 가지 다 모두 좋은 방법이고요. 이 글을 읽고 계시는 여러분들이 믿으실지 안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저도 머릿속으로는 이렇게 썼습니다. 쟝님처럼요. 일단 읽는다. 관련된 책을 <같이> 읽는다. 좋은 입문서를 찾아 읽는다. 근데 제가 코비드19 바이러스의 공격을 받은 상태였기에,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고, 일어나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었기에 그렇게나 간단히 써버렸던 것입니다. (믿어주세요, 제발ㅎㅎㅎ 사실 지금도 제정신이 완전히 돌아온 건 아닙니다. 여러분 눈에도 보이시죠?)
저는 여기에 한 가지를 추가하고 싶은데요. 읽고 이해한 것을 글로 써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어떤 책을 읽고 새로운 사실 혹은 지식을 2개(수량화하는 게 좀 유치하기는 하지만 일단 그렇게 해보겠습니다) 알게 되었다고 해 보죠. 글을 쓰다 보면 내가 알게 된 게 2개가 아니라 3개였다는 걸 발견하게 됩니다. 그런데 어떤 분이 제 글을 보고 댓글을 달아 주셨는데, 또 다른 2-3개의 지식과 정보, 통찰을 보여주셨다고 해봐요. 저는 그에 대한 답을 해야 합니다. 그게 찬성이든 논증이든 비판이든 간에요. 댓글을 읽고 대댓글을 고민하는 도중에 저는 새로운 2-3개의 지식과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최대한 9개의 지식과 정보와 통찰을 얻을 수 있겠지요. 묻고 대답하는 과정을 통해, 서로의 질문이 같은 것인지 확인하는 시간을 통해, 그래서 얻고 싶은 이해가 무엇인지 알아가는 과정을 통해서요. 저는 이런 식의 공부가, 공부의 ‘효용’을 몇 배로 향상시키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알라딘 서재에서는 <무료>입니다. 무림고수가 24시간 대기하고 있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역사, 외국어, 패션, 요리, 집사 생활까지 무엇이든 물어볼 수 있습니다. 답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어떻게 공부가 되는지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여기, 알라딘입니다. 그래서 알라딘을, 알라딘 서재를, 알라딘 이웃님들을, 알라딘의 무림고수들을 무한대로 ‘활용’하시기를 적극 추천해 드리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쟝님이 말했던 ‘내게 중요하게 느껴지는 것을 중심으로 계속 겹쳐서 읽어가는 것’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쟝님의 댓글과도 겹치기는 하는데, 일단 정희진 선생님의 문장을 그대로 가져와 봅니다. <정희진처럼 읽기>입니다.
책을 읽은 방법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습득이고, 하나는 지도 그리기(mapping)이다. 전자는 말 그대로 책의 내용을 익히고 내용을 이해해서 필자의 주장을 취하는(take) 것이다. 별로 효율적이지 않다. 반면 후자는 책 내용을 익히는 데 초점이 있기보다는 읽고 있는 내용을 기존의 자기 지식에 배치(trans/form 혹은 re/make)하는 것이다. 습득은 객관적, 일방적, 수동적 작업인 반면에 배치는 주관적, 상호적, 갈등적이다. 자기만의 사유, 자기만의 인식에서 읽은 내용을 알맞은 곳에 놓으려면 책 내용 자체도 중요하지만 책의 위상과 저자의 입장을 이해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러려면 기본적으로 사회와 인간을 이해하는 자기 입장이 있어야 하고, 자기 입장이 전체 지식 체계에서 어떤 자리에 있는가, 그리고 또 지금 이 책은 그 자리의 어디에서 나온 것인가를 파악해야 한다. (<정희진처럼 읽기>, 37쪽)
고백하자면, 저는 철학 읽기가 너무 힘듭니다. 몇 달 전에 <들뢰즈 이후 페미니즘>이라는 책을 구입해서 여러 차례 도전해 보았으나 결국 읽기를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현대 사상 입문>이라는 책을 사서 줄 그으면서 열심히 읽었습니다만, 그 책을 읽었다는 사실조차 ‘말할 수 없는 비밀’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왜냐하면, 딱 봐도 리뷰를 쓸 수 없을 거라는 걸, 제가 알았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제게 철학은 너무나 멀고, 또 멀리에 있습니다. 저는 솔직히 그리 가까이 가고 싶은 마음도 없구요.
그중에 가장 가까이 갈 수 있는 게 페미니즘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삶, 우리의 생활과 깊이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비교적 짧은 설명으로도 그 핵심에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자로서 살아왔던 삶이 있기 때문이겠죠. 지금, 이 글을 쓰는 도중에 수하님이 또 댓글을 다셨는데, ‘현재 기혼이고 아이가 있다보니…’라며 자신의 현재 위치에 대한 언급을 하셨어요. 선생님이 100번 강조하신 것처럼 우리의 자리, 우리의 위치에 대한 인식, 그리고 그러한 인식의 토대에 대한 고찰이, 모든 공부의 바탕이고 또한 더 강한 힘으로 이 지루한(?) 공부를 밀고 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이야기하고 싶은 건요. 그렇게 공부하고 고민하는 답이 책에 반드시 있는 건 아니라는 걸 말하고 싶어요. 페미니즘이 모든 것에 대한 답이 될 수 없는 것처럼요. (너무 당연한 이야기라서 죄송요.) 읽고 쓰는 것이 중요하죠. 고민할 뿐만 아니라 구도하는 자세로 공부하고 연구하는 일이 소중하고 또 귀중하죠. 하지만 거기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고, 저는. 저는 생각합니다.
쟝님이 내내 제게 말하듯, 저는 기독교인이고, 그것이 제 삶의 주요한 근간 중 하나입니다. 종교가 제일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종교의 타락한 일면을 우리는 너무나 많이 알고 있으니까요. 다만, 답을 인간 안에서 찾는다는 것도 그리 지혜로운 방법은 아니라는 점을, 저는 지적하고 싶습니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저를 봐서 그래요. 그리 신뢰할 만한 존재가 못 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의 지배 속에서 콜록거리는 저를, 자리에 누워있는 저를, 골골거리는 저를 보세요. 제 정신은 저의 육체보다 강건할까요. 아니요, 오히려 더 유약하고 더 부패하고 신의 없이 마냥 흔들리는 것이, 저의 정신입니다. 완벽한 절대자에게로의 귀의를 청하는 게 아니고요. ‘순진하고 맑은 영혼’이 인생사 잠깐의 담지자가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궁극의 지점에는 당도할 수 없음을 말하고 싶어요. 그것이 인간의 말이기 때문이죠.
여기서 이러면 죄송한데, 성경 한 구절만 인용하고 싶습니다. 공식적으로는 아니지만, 비공식적으로 인류사를 통틀어 가장 지혜롭다고 여겨진 솔로몬 왕의 말입니다.
내 아들아 또 이것들로부터 경계를 받으라 많은 책들을 짓는 것은 끝이 없고 많이 공부하는 것은 몸을 피곤하게 하느니라.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전도서 12장 12-13절)
어제는 자기 전까지 많이 더워서 조금 늦게까지 썼는데(그게 겨우 11시 30분) 오늘 새벽에는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더라구요. 입추 아니랄까 봐. 발밑 이불을 끌어 당겨 끝까지 덮고 다시 잠들었습니다. 저는 아직도 기침이 콜록콜록. 코비드 재감염은 첫 번째 감염 때보다는 증세가 훨씬 덜합니다만 아픈 것은 그대로이고. 특히 기침과 가래가 무척 괴롭습니다. 여러분, 참고해 주시기 바래요.
긴 글 읽어주신 여러분께 감사의 의미로 사진 투척합니다. <한 점 하늘 김환기 a dot a sky kim whanki>입니다.